[100세 시대 신간] 대니얼 깁스/터리사 H. 바커 <치매에 걸린 뇌과학자>

“삶은 언제나 참 좋은 것”…치매 의사가 전하는 ‘치매를 이기고 끝까지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방법’
조진래 기자 2025-08-21 08:51:12

뇌의 퇴행성 장애인 ‘치매’는 정상적인 노화 과정보다 훨씬 심하게 우리의 기억을 빼앗아간다. 사고 과정에도 혼란을 일으켜 본인은 물론 가족 등 주변 사람들도 이전 같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힘들게 만드는 고약한 병이다.

전체 치매 가운데 60% 가량이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1906년에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가 우리 뇌 속에 원인 뭉치를 발견했다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 문제는 이를 미리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환자가 사망한 후에 뇌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것 뿐이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생체표지자(몸 속 변화를 특정하고 질병의 존재 여부나 건강 상태를 판단하는 데 쓰이는 생체 신호) 검사를 통하거나 뇌척수액 검사 등에서 진전이 있다. 이를 통해 살아있는 동안에도 알츠하이머병의 존재에 대해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를 통해 치매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의 위치를 파악할 수도 있게 되었다. 지금같은 기슬 발전 속도라면, 멀지 않아 간단한 혈액 검사만으로도 치매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여러 연구를 통해 치매 전에 뇌에서 가장 먼저 생기는 이상인 ‘플라크’ 형성이, 치매의 인지 증상이 나타나는 시점보다 길게는 20년이 앞선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렇다면 조기 진단에, 증상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치료를 시작한다면 치매에서 벗어날 수 도 있다는 얘기다.

저자인 대니얼 깁스는 은퇴한 신경과 의사이자 뇌과학자다. 그는 자신을 ‘천천히 잠식해가는’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라고 소개한다. 치매 발병 사실을 남들보다 먼저 인지한 후, 알츠하이머의 조기 인지와 관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활동 중인 의사다. 

저자가 남들보다 일찍 치매기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치매 유전적 인자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이하게도 “그 시기에 병을 발견한 것이 정말이지 큰 행운”이라고 했다. 덕분에 임상시험이나 혁신적인 치료법들을 경험하며 최첨단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자신의 의료지식과 경험을 살려, 알츠하이머 인지와 동시에 생활습관부터 바꿨다. 전반적인 뇌 건강과 신경 회복탄력성에 유익하다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식단과 운동, 사회적 활동과 지적 활동을 실천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 그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치료제인지를 절감했다. 그 경험을 나누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저자는 일관되게, 알츠하이머병 진단이 곧 삶의 의지의 포기로 이어져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하겠다고 진지하게 마음 먹는 계기가 되어야 하며,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격려한다. 

더욱이 병을 일찍 알게 되었다는 것은, 그 과정을 멈추거나 늦출 수 있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조치를 더 빨리 취할 수 있는 기회라고 용기를 준다. 아울러 삶의 다른 우선순위를 더 빨리 재검토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다독인다.

저자 역시 자신의 발병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낙담했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가 달랐던 점은,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히려 자신을 통해 치매의 예방과 치료 방법을 찾는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될 수 있으며, 그것에서 삶의 또 다른 의미를 찾게 되었다고 만족해 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치매 치료의 가능성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실천했다. “내가 이제까지 배운 사실들이 알츠하이머병이 주는 공포와 두려움 뿐만아니라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는 우리에게 존재하는 희망과 삶의 선물에 관해서도 증언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는 전했다.

저자는 “누구의 삶에서든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과정을 바꿀 기회인, 생물학적으로 유일무이하고 대체할 수 없는 시기의 잠재력을 명확히 알리는 것이 내 목표”라고 했다. 헛된 희망이나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고 했다. 운동과 식생활, 사회적 활동과 인지적 도전이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늦춰준다는,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확립된 연구 결과에 증거 기반의 의과학이 더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치매 전조증상을 10년 전부터 감지한 덕분에 선제적인 조치로 실제 병의 진행 속도를 크게 늦췄다. 남들보다 10년 일찍 생활습관에 변화를 줌으로써 이른바 ‘인지예비능(cognitive resilience)’을 키울 수 있었다. 똑같이 치매에 걸리더라도 인지예비능이 높은 사람은 인지 손상이 늦게 시작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 보였다.

처음에는 상실감이 컸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충만한 삶을 살면서 남은 시간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의사이자 과학연구자로서 늘 사람들을 돕는다는 생각이 그를 이 길로 이끌었다. 의사로서의 경력은 끝나지만 연구와 강연, 글쓰기 같은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을 그는 담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이 책에서 끝까지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방법을 일러준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격려와 권고를 받아들이기를 소망했다. 그럼으로써 조금이라도 치료에 자신감을 갖게 되기를 희망했다. “삶은 언제나 참 좋은 것”이라는 그의 말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조진래 선임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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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벌써 노안(老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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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60이 넘으면 안과 질환이 흔해 진다. 가까운 물체에 초점을 맞추기 어려워지거나, 백내장이 와 수정체가 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