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칼럼] 건망증 뛰어넘기

조진래 기자 2025-10-15 09:12:36

나이가 들수록 건망증 때문에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형 할인점 주차장에서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거실에서 부엌으로 왔는데 무엇 때문에 왔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외출할 때 한참 걷다가 핸드폰을 두고 나와서 다시 돌아갔다. 안경을 어디에다 두었는지 찾을 수 없어 외출을 포기한 적도 있다. 최근에는 손목시계를 어디다 풀어놨는지 기억못한 때도 있었다. 이런 일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어 쉽게 피곤하다. 다리까지 절뚝거리니 영락없는 노인이다.

노인은 나이가 많고 무기력해서 사회적으로 부담된 이미지다.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교육장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삶을 배우고 있다. 나이 티를 내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젊은이와 함께 공부한다. 나이 들어 할 일이 없다면 자원봉사를 추천한다. 자원봉사는 인격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고 덕성을 베풀 수 있는 나눔의 장이다. 지난 5월에는 복지관에서 주관한 자서전 쓰기 도우미 역할을 했다. 93세 독거노인 신 씨의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남겼다.

신 씨는 남편이 사망한 2년 후에 고향을 떠났다. 그 때가 60세 되던 해다. 시골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서울에 올라와서 지인의 소개로 식당 일을 했지만, 글자를 모르니 어려움이 많아 그만 두었다고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폐지 모으기를 30여 년 동안 하고 있다. 세발자전거를 밀면서 밖에 나가면, 인심 좋은 이웃이 모아둔 폐지를 자전거에 담아주며 격려해 준다. 그래서 항상 이웃들에게 감사와 고마움으로 살아왔다.

그는 배우지 못한 것도 서럽지만 귀가 안 들려서 더욱 힘들다. 한 평생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기억력 때문이리라. 일주일 동안 지내왔던 일과 만난 사람을 막힘없이 털어놓는다. 신 씨는 방에 있을 때는 힘들지만 밖에서 활동하면 행복하다. 은행에 가면 직원들이 알아서 잘 처리해 준다. 시골에 살다가 도시에 오면 힘들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주위의 도움으로 호강하며 살아왔다고 털어놓았다. 

매달 30여만 원의 연금을 받고 점심 때는 천주교에서 도시락을 배달해 준다. 전셋집 주인은 17년 동안 집세도 올려달라 하지 않고 월 5000원 공과금만 받는다. 그의 일상은 오직 감사와 고마움 뿐이다. 뇌는 긍정과 감사 환경에서 젊어진다. 서로 주고받는 내용을 정리해서 읽어주면, 둘이 아니고 셋이라고 정정한다. 그의 기억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신 씨처럼 감사와 규칙적인 생활은 질병이나 건망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 뇌는 사용할수록 좋아지지만 방치하면 녹슨 기계처럼 치매의 원인이 된다. 핸드폰이 보급되면서 가족 전화번호까지 잊어버린 뇌를 탓하고만 있을 일은 아니다. 일상이 감사한 생활이고, 이웃과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다면 건강한 삶이다. 그는 건망증을 뛰어넘은 대표적인 고령자다. 존경스럽다.

임병량 시니어 명예기자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