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더 다른 세대와 섞여 살아야 해요”

<나이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 저자 김경인 박사, 이필재 인물 스토리텔러 인터뷰
이의현 기자 2025-05-30 09:09:00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으 저자 김경인 박사. 사진=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신간으로 최근 회제가 되고 있는 김경인 박사가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의 주선으로 이필재 인물 스토리텔러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노인과 청년이 같은 공간에 있다 보면 서로를 이해하게 되어, 세대 간 단절과 노인 혐오를 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인들도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면 서로 우울해 진다면서, 보다 적극적인 ‘함께 살기’를 강조했다. 김경인 박사와 이필재 스토리텔러의 인터뷰 내용을 재구성해 요약 소개한다.

- ‘세대 교류형 주거시설’을 강조하고 계시다. 누구나 살 수 있는 일종의 공동주택인데, 노인들에게 편리하고 노인이 특별 배려도 받는 시설 을 말하는 것인가.

“그런 특별 배려를 받지 않으면 노인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 키워드가 ‘돌봄’에서 ‘자립’으로 바뀌고 있어요. 다른 세대와 마찬가지로 노인도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과 자립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세대 교류형 주거 시설의 핵심 콘셉트는 다른 세대끼리 만나는 공간을 반드시 설계에 반영하고 거기서 일상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 ‘대가족제’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으니, 단지 단위로 젊은 사람들과 섞이게 하는 것이군요.

“한 건물 안에서 서로 섞일 수도 있고, 별도의 커뮤니티 시설에서 섞일 수도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칩니다. 수직적 세대 교류지요. 이렇게만 해도 노인들이 정서적인 안정을 얻고 고립을 피할 수 있습니다. 노인이 나름의 역할을 할 수도 있어요. 일본의 경우 치매 노인도 이런 주거시설에서 경제활동을 하게 합니다.”


- 세대 교류형 주거시설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요.

“일본은 임대 아파트에 빈집이 생기면 고령자를 입주시킵니다. 분산형 고령자 주택이지요. 이 경우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세대 교류가 이루어집니다. 리모델링하면서 도심 공동주택의 특정 동을 고령자 주택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 식당·도서관 등의 동네 커뮤니티 시설에서 교류가 일어나게 되지요. 특정 건물 1층에 노인시설과 어린이집을 배치하고, 2~3층에 젊은 세대를 위한 시설을 넣기도 합니다. 그 위에는 서비스가 필요한 고령자를 위한 시설, 맨 위에 서비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고령자 시설을 입주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건물 안에서 각종 세대가 섞이겠지요.”

- 노인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도 필요해 보입니다.

“노인 문제를 돌봄으로 접근하면 모종의 시설이 필요하고, 자립으로 접근하면 그냥 본래 살던 집이면 됩니다. 치매도 위염처럼 하나의 병이잖아요? 위염을 앓는다고 우리가 환자를 격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요. 치매도,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분리하기보다는 공존하고, 그러기 위해서도 세대 간에 교류를 해야 합니다.”

- 실버타운에 대해 회의적이군요.

“실버타운의 여러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치매를 앞당길 수도 있어요. 기능이 퇴화하는 것이지요. 노후에는 밥 한 끼 정도는 직접 해 먹는 게 좋습니다. 음식을 만들려면 머리를 쓰고 근육을 움직여야 하거든요. 그래서 요리는 치매를 예방하는 운동이자 종합예술입니다. 우리나라 실버타운은 ‘편의성’은 뛰어나지만, 고립된 성채처럼 ‘개방성’이 약합니다. 지역사회 주민과 섞여야 해요. 우리나라 실버타운은 마치 호텔처럼 시설은 세련됐는데 인간적인 따뜻함이 부족한 것 같아요. 실수요자인 노인이 아니라 입주 의사결정을 하는 자녀들 눈높이에 맞췄기 때문이지요. 실버타운 설계에 실버는 없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노인의 정체성도 배제됐다고 할 수 있지요.”

- 나이 들면 집이 위험하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하십니다. 

“고령자 사고의 63%가 집에서 납니다. 근력이 약해지고 균형감각이 떨어지면 낙상을 당하기 쉬운데, 집에서 일어나는 낙상 사고의 70%가 욕실에서 일어나요. 욕실 바닥을 논슬립 타일로 바꾸거나 논슬립 스티커를 붙이는 게 좋습니다. 슬리퍼도 논슬립 슬리퍼로 바꾸면 걸을 때 잘 밀리지 않아요. 손잡이(핸드레일)을 달고, 샤워부스 바닥의 작은 단차도 없애고, 세면대와 가구는 모서리가 둥근 게 좋아요. 돌리는 문손잡이는 힘이 없는 노인이 문을 열지 못해 방안에 갇힐 수도 있습니다. 바퀴 달린 의자도 노인에겐 위험하고요. 가스레인지도 인덕션으로 교체하는 게 좋습니다.”

사진=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 인지장애를 겪는 노인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 드립니다.
“현란한 패턴의 벽지를 피하고, 벽과 바닥 색을 달리하는 게 좋습니다. 치매 환자의 경우 사물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물 간에 색차가 있어야 합니다. 수정체 황변을 겪는 노인의 경우 파란색 계통의 색을 잘 구별하지 못하니, 노인을 위한 시설은 무지개의 일곱 색깔 중 녹색 아래 쪽 색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 옛 기억을 상기시키는 가족사진, 기념이 될 만한 물건 같은 것을 배치하는 것도 좋습니다. 밤에 약한 조명의 전등을 켜두고, 전등 스위치에 야광 스티커를 붙여두는 것도 도움이 돼요. 침대 핸드레일도 필요합니다.”

- 일본은 지자체가 이런 경비를 고령자에게 지원해 준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이렇게 경비를 지원하면 의료, 복지 등 초고령사회의 사회적 비용을 감축하는 효과가 있어요. 국내에서도 서울 성동구가 이런 ‘에이징 인 플레이스(Ageing In Place: 고령자가 기존에 거주하던 익숙한 곳에서 계속 거주하는 것)’ 사업을 합니다. 자기 집에서 노후를 보내도록 주거 환경을 개선해 주는데 1000 가구 이상 지원했습니다.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능력이 되는 노인, 즉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살게 하는 것이지요. 실버타운 필수시설 가운데 몇 가지만 하면 됩니다. 독거노인의 경우 비상벨도 필요해요.”

- ‘에이징 인 커뮤니티(AIC)’도 강조하셨습니다.

“AIC는 노후에 특정 주택 단지를 포괄하는 지역사회 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을 입주자만 이용한다는 것은 AIC에 반하는 것입니다. 세대 교류도 ‘AIP’를 넘어 ‘AIC’로 이행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고령 친화 도시로 나아가야지요.”

- 노후에 살 집을 고르는 조건이 뭐라고 보시나요.

“접근성이 뛰어나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안전해야 지요.집을 나서면 다른 사람들과 교류가 가능해야 하고요. 사람은 하루의 90% 가까이 건물 안에 있습니다. 그 공간이 노후엔 거의 집입니다. 외출의 편의를 생각하면 역세권에, 공동주택의 경우 6층 이하가 바람직합니다. 주변에 녹지가 있고 병원이 가까우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 노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으로는 무엇을 꼽겠습니까.

“자립의 조건인 ‘자율성’을 첫 손에 꼽고 싶습니다. 또 교류할 친구가 있고, 의미 있는 활동도 해야겠지요. 경제 활동이면 더 좋고, 봉사활동이라도 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노후에 사람을 만나고 돈도 버는 택시 운전을 하는 것 같아요.”

- <나이 들어 어디서 살 것인가>의 핵심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나이 들면 여태 살던 곳에서 자립과 존엄을 지키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자립을 지속할 수 있어야 존엄도 지킬 수 있습니다. ‘인생 후르츠’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인 건축가가 집을 지어 아내와 존엄하게 살다가 97세에 텃밭을 매고 온 후 낮잠을 자듯 세상을 떠납니다. 말 그대로 ‘존엄사’지요.”

 이의현 기자 yhlee@viva2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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